"인공지능이 코딩도 대신해주는 마당에 우리가 코딩을 피할 방법은 없다!" -본문 중
2017년 겨울, 신입1년차였던 나에게 운좋게 런던지사에서 한달 동안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어쩌면 그 한달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나름 엘리트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런던에서 정말 국제적으로 노는(?) 엔지니어들과 일하면서 일종의 벽을 체감했다. (후에 알고보니 그들도 유럽 명문대학교 출신이었다.)
동시에 '아, 내가 가야할 길이 저 길이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가끔씩 본사(덴마크)나 런던에서는 어떤방식으로 일하는지 모니터링(?)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졸업생 중 설계사에 근무하고 있는 영엔지니어는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아는 선후배 중에는 두 명 밖에 없다. 내가 그중 한명이고 나머지 한명은 내가 꼬신(?)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기이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아니더라도 요새 설계사에서 젊은 엔지니어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영엔지니어들은 왜 이렇게 설계사를 기피하는 것일까?
결국은 적은 월급에 비해 업무강도가 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업무강도가 센 이유가 어렵고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기계처럼 해야하는 일의 양 자체가 많기 때문이라 MZ세대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동기부여를 얻기도 힘들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이유가 맞다 면 해결책은 세가지이다.
월급이 시공사와 맞먹거나
업무강도가 월급에 맞춰 약해지거나
업무성격이 좀 더 재밌고 도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갑자기 회사에서 연봉을 올려주거나 업무강도를 낮춰줄수있을까? 더 도전적인 일을 하기위해 시간투자를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위 세가지를 얻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코딩이다.
국내설계사는 주로 설계업무를 Excel을 사용하여 처리한다. Excel 자체로도 충분히 Excellent하고 VBA를 활용하여 코딩도 가능하지만 이보다는 python이나 Matlab 같은 언어를 사용한 코딩을 업무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혹시나 코딩을 해본적이없어서 먼나라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하지말자.그리고 코딩을 하기 위해 코딩강좌를 듣는 것은 개인적으로 비추한다. 물론 강좌를 수강하면 훨씬 더 기본기가 탄탄해지겠지만 효율면에서 떨어진다. 실무에 바로 적용가능한 코드를 정해놓고 배우면서 짜는 것이 가장 빠르게 배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코딩언어중에 무엇을 사용하면 좋을까? 개인적으로는 python을 추천한다. 우선, python은 무료다. 라이센스 걱정없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개인pc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해외엔지니어들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COWI는 직원들 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는데 python 커뮤니티에 가입된 회원수만 800명이 넘는다. (참고로 Matlab 커뮤니티 회원은 약140명)
그래서 Matlab 유저였던 나도 python으로 옮겨 탔다.
그럼, 어떤 코드부터 짜보는게 좋을까?
사실 토목구조엔지니어가 업무에 사용하는 코드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기능은 거의 100% 구현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전세계에 누군가가 시도를 하다가 막혀서 질문을 했고 고인물(?)들이 그에대한 답변 및 예시코드를 짜놔줬기 때문에 구글에 검색만 잘해도 원하는 코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부터는 이조차도 필요없게 됐다.
chatGPT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기능을 가능한 명료하게 영문으로 검색해서 나와 가장 비슷한 질문을 찾고 그에 대한 답변 중 가장 알맞은 것을 골라야했다.
하지만 이제는 chatGPT에 그냥 원하는 기능을 알려주고 python 코드로 짜달라고 하면 짜준다…
서울대학교의 한 구조연구실은 대학원 신입생에게 가우스소거법을 포트란으로 짜는 과제를 내준다. 얼마전까지는 혼자 가우스소거법을 이해하고 알고리즘도 짜고 포트란 문법도 익히면서 선배들 코드를 참고해서 과제를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chatGPT에 짜 달라고 하면 3초면 짜준다. 물론 가우스소거법을 이해하고 알고리즘 짜는 훈련은 정말 중요하지만 특정언어의 문법을 공부할 필요는 없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즉, 인공지능이 코딩도 대신해주는 마당에 우리가 코딩을 피할 방법은 없다!
나는 구조계산서 부록을 만드는 작업에 처음으로 코딩을 접목시켰다.
엑셀에 값을 입력한 후 pdf로 출력 및 병합하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그 양이 방대해서 처음에 엔지니어 두 명에게 이틀간 끝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있던 나는 칼퇴가 절실했기 때문에 대학원 시절에나 썼던 Matlab을 다시 사용해보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두명이서 이틀간 해야했던일을 혼자서 두시간 걸려서 했다. 나는 당연히 칼퇴를 했고,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이면 32시간(8시간 x 2명 x 2일) 걸릴일을 두시간만에 했으니 회사입장에서는 30시간을 번 것이다!
코드가 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코드를 짜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이 때 짜 놓은 Matlab코드가 있었기때문에 이후에 python으로 넘어올 때 더 쉽고 빠르게 코딩을 할 수 있었으니 아깝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부록 만드는 데서 재미를 본(?) 나는 MIDAS 모델링하는 코드를 도전하게됐다.
비교적 단순하고 모듈화 된 구조물이었고 모델링 해야 하는 구조물 개수가 많았기 때문에 코딩을 통한 자동화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한 구간을 모델링하는데 하루면 충분했다. (메뉴얼하게 한다면 일주일, 아무리 빨라도 3일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MIDAS 모델링하는 코드는 부록만드는 코드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에 거의 한달은 투자한 것 같다. (감사하게도 프로젝트 매니저가 따로 시간을 할당해주셔서 업무시간에도 코드를 짰다.)
하지만 시간을 부여받은 만큼 결과물을 냈어야 했기 때문에 주말에 개인시간을 들여서 코딩을 하기도 했다. '개인시간을 업무에 사용한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나중에 일이 몰릴때 칼퇴하기 위해서, 또 나의 커리어상 도움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즉, 나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실제로 이때의 경험으로 직접해보지 않으면 모를 문제들과 거기서부터 배울점들을 발견하게되었다.
다시 내가 생각하는 설계사 기피현상의 해결책 3가지로 돌아가보자.
월급이 시공사와 맞먹거나
업무강도가 월급에 맞춰 약해지거나
업무성격이 좀 더 재밌고 도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먼저, 코딩으로 일한다고 당장 월급이 오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입장에서 시간이 절약된만큼 다른일을 할 수 있고 회사가 돈을 더 번다면 엔지니어의 대우도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업무강도는 확실히 약해진다. 내가 손수해야할 일들을 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컴퓨터가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코딩을 통해 같은 일을 더 도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짠 코드가 원하는대로 작동했을 때 얻는 성취감으로 일이 더 재밌기도 했다.
그래서 코딩이 위 세가지를 얻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죽어가는 설계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지금 당장 할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실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 개인이 설계사 기피현상을 해결한다고 유난떠는거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나 혼자 잘되는 것 보다 내가 속한 분야, 회사가 잘돼서 내가 잘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즉, 지극히 나를 위해서 생각한 방법이다.
현재 나는 업무에 코딩을 접목한지 일년이 넘어가고 있고 python을 사용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사내 영엔지니어 모임에서 python을 사용하자고 외치고 있는데 아직은 좀 외롭다.
MOTIVE에서 이 글을 보고 많은 영엔지니어들이, 미래의 영엔지니어가 될 학생들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벽인 코딩에 도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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