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설계라는 용어는 구조물을 설계함에 있어서 지진이라는 자연을 상대로 안전하게 설계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조물이 건설될 특정 지역에 발생할 지진의 크기 및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비롯하여 인간과 대화하는 챗 GPT으로 대표 되는 딥러닝 인공지능과 같은 놀라운 기술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2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튀르키예 지진처럼 대지진의 발생 자체는 여전히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또한 지진하중으로 작용할 지진파의 최대가속도 및 주파수 특성에 대해서도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는 발생할 지진의 크기 및 성질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지진에 대하여 안전하게 설계하였다고 생각하는 상황이고,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기술자들은 의미는 잘 몰라도 국가에서 제정한 시방서에 기술된 절차에 따라 설계를 하면 제대로 설계된 것으로 만족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2017년4월 국민안전처에서 발행한 "내진설계기준 공통적용사항"에 대하여 별도의 책을 참조하지 않고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개념만으로 응답스펙트럼의 형상을 결정하는 배경 및 물리적인 의미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수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설명은 공학도들에게는 뼛속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미분방정식이라는 수학을 사용하여 진동이라는 물리현상을 풀이하는 "일자유도계의 자유진동"과 "일자유도계의 강제진동"을 풀이하는 과정은 별도로 마련해 보려고 한다.
사실 구조역학의 분야에서 맥스웰 베티의 법칙 으로 알려져 있는 중첩의 원리와 고유치 문제를 공부하여, 선형계 에서는 일자유도계 응답의 합산으로 다자유도계 응답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동역학은 거의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스웰 베티의 법칙 (Maxwell–Betti Law)
선형계 (Linear system)
일자유도계 (Single-degree-of-freedom system, SDOF system)
다자유도계 (Multi-degree-of-freedom system, MDOF system)
필자가 공부한 경험으로 과거를 되돌아보면 특별히 선생님을 만나지 않고 독학으로만 공부하다 보면, 어떤 학문이든 통찰력을 갖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유치 문제는 물리학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중학 과정에서 배우는 다원일차연립방정식에서 우변항이 모두 0일 경우의 문제를 푸는 것으로, 미지수가 특정한 값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비례식으로 표현되는 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한층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림-1)은 응답스펙트럼의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판단되는 개념도이다. 위 그림을 스스로에게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응답스펙트럼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응답스펙트럼을 속속들이 이해했다고 하는 것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
어떤 것이 있을까?
응답스펙트럼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상대속도 (Relative Velocity), 상대변위 (Relative Displacement), 절대가속도 (Absolute Acceleration) 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동역학 교재를 보면서 상대 (Relative)라는 단어와 절대 (Absolute)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시하고 책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상대는 뭐고 절대는 뭐란 말인가?
우리들은 움직이는 물체의 미분방정식을 작성할 때 기준 좌표계는 진동하는 물체의 하단부인 지면을 기준점으로 하는 좌표계를 설정한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차에서 우리들은 아무런 힘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로서, 속도 및 변위는 물체의 기준 좌표계에서 상대적인 변위 및 속도가 발생할 때만이 의미를 갖는 물리량이다.
즉, 속도 응답 및 변위 응답은 상대적인 속도 및 상대적인 변위가 물리적인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가속도는 물체의 상대가속도와 지반의 가속도를 더한 절대가속도가 실제의 가속도가 된다. 즉, 가속도 응답은 절대가속도가 물리적인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국내에 내진설계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 기술자들은 해석 프로그램의 입력 항목에서 질량단위를 입력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중력이 곱해진 무게를 입력하여 고유주기가 길게 산정되는 오류를 범하였지만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시공 도중에 발견된 일도 있다.
잘못된 고유주기 산정으로 인한 설계지진력 부족이 “부산 광안대교의 트러스 접속교”가 면진설계로 설계 변경되는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동역학에서 있어서 중력이 곱해진 무게단위가 아닌 질량단위를 입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력을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선에서는 모든 물체는 물체의 질량에 상관없이 모두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질량이 다른 두 물체를 수평으로 밀 때는 같은 힘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질량에 비례하여 저항력이 달라진다”는 사실로 이해하면 된다.
응답스펙트럼이 내진설계에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발생할 지진력의 크기 및 모양을 산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형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다양한 것처럼 지금까지 관측된 지진파 응답스펙트럼의 형상은 모두가 다르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형상에 큰 차이가 있어 개략적인 분류가 가능한 것처럼, 지진파의 특징 또한 개략적으로 분류한 것으로 이해하자.
어떤 지진파에 대한 응답스펙트럼의 형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응답스펙트럼의 일반적인 의미와 특별한 경우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절점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고찰해 보자.
첫째, 고유주기가 0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고유주기가 0인 상태는 (그림-2)의 (1)처럼 물체가 지면에 완전히 붙어 있는 상태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지면에 물체가 접착제로 완전히 붙어 있다면 물체의 상대적인 변위, 상대적인 속도, 상대적인 가속도는 모두 0이 된다.
그리고 응답스펙트럼에서 가속도응답은 물리적인 의미가 있는 절대가속도로 정의되며 0주기에 해당하는 상대가속도는 0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속도 응답스펙트럼은 입력지진파의 최대가속도 값을 나타낸다.
둘째, 주기가 무한대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주기가 무한대라는 의미는 (그림-2)의 (2)처럼 엄청나게 큰 질량을 매우 가는 스프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경우로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구조물에 지진력이 작용한다면 지반은 결코 구조물을 진동시키지 못하고 지반이 그냥 혼자서 움직일 뿐이다.
즉 주기가 무한대인 구조물의 변위응답은 무한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변위의 최대값으로 수렴하게 된다.
입력지진파와 응답스펙트럼이 관련된 직관적인 값은 이러한 두 가지 뿐이다.
나머지 주파수 특성에 관한 부분은 지진파가 발생한 단층의 크기 및 파괴메커니즘에 따라 다르며, 지진파의 전파경로, 그리고 관측지역의 표층지반에 따라 달라진다.
각 국가에서 정의되는 내진설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계응답스펙트럼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지진 다발국이며 선진국인 미국, 일본의 스펙트럼 모양은 서로 상이하고, 한국에서도 토목, 건축 적용되고 있는 설계응답스펙트럼의 형상 및 모양이 모두 상이하고 개념도 달라 설명에 한계를 느낀다.
필자의 느낌은 어떤 크기의 지진이 어떤 경로를 따라 전파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대하여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점점 세분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조금 짜증이 난다.
어떤 지진파형에 대하여 어떤 스펙트럼의 형상을 가질 것 인가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주기가 0인 경우에 최대응답가속도는 지반가속도의 최대값과 동일하다.
주기가 무한대인 경우에는 최대변위는 지반의 변위로 수렴된다.
두 가지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1940년대 미국에서 강진계가 개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관측된 지진파의 평균적인 얼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니 “단주기 영역인 1초 정도까지는 응답가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갖지만, “주기가 길어짐에 따라 응답가속도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 이외에는 없다.
이러한 지진파의 주파수 특성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도로교 표준시방서가 준용하고 있는 미국의 AASHOTO 규정이다(그림-3.1).
매우 짧은 단주기에서는 지진파의 최대가속도보다는 과대평가하고 있지만, 단주기 영역에서 수평으로 처리하는 것도 간단명료하다. 이런 영역에서 속하는 구조물이 많지 않으며 설계 측면에서는 안전측이기 때문에 수긍할 수 있다.
장주기에서 응답이 떨어지는 경향을 너무 크게 산정하면, 점점 대형화 되어 가는 구조물에는 지진력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줄어드는 경향을 나타내는 지수인 “주기(T)의 (2/3)승”이라는 값은 정확한 값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관측되는 지진파의 성질을 대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지반의 종류에 따라 연약한 지반일수록 비례적으로 큰 값을 갖도록 설정된 것도 매우 논리적이다. 지반의 종류라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분하려면 더욱 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4종류로 단순하게 정리하고 있다.
스펙트럼의 형상과 더불어 더욱 예상하기 어려운 값이 지진파의 최대가속도 값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경우에는 지진이 많은 서부지역을 기준으로 산정이 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 관측되는 지진을 보면 최대가속도가 점차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지진 자체가 크게 발생한다고 해석하기보다는 계측장비의 정밀도가 향상되어 단주기 성분을 크게 기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2017년 4월 우리나라 국민안전처에서 발표된 표준스펙트럼을 보면 많이 복잡해졌다.
일본 지진연구소에서 유학시절에 많은 지진파의 스펙트럼을 그려 본 경험에 의하면, 미래에 발생할 지진파의 특성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내진성능이 향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최대 설계가속도의 값이 관측기록과 점점 일치하지 않는다. 90년대만 하더라도 1.0g를 초과하는 지진은 없을 것이라 했지만 95년 고오베 지진 시에는 0.7g를 초과하였으며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에 피해를 초래한 일본 후쿠시마 지진의 최대가속도는 3.0g을 넘는 기록도 나왔다.
그러면 설계지진력의 10배가 넘는 기록에도 구조물은 왜 전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우리들이 수행하는 내진설계에 어떤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답변은 지반과 구조물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연약지반의 경우에는 지반의 증폭효과에 의한 관측기록도 크지만, 지반과 구조물의 상호작용으로 지반으로 에너지가 방출되는 일산감쇠의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스펙트럼의 형상을 결정하는 주파수 특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림-4)은 지진의 발생원인인 단층운동, 전파경로 및 표층지반의 증폭특성 등 지진파가 내포하게 되는 다양한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첫째, 지진파의 특성은 활성 단층의 크기로 결정되는 지진규모 및 단층의 파괴형상을 결정하는 단층모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파괴되는 단층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지진의 계속 시간이 길어지며 장주기 성분이 발달하는 경향이 크다.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이지만 활성 단층의 크기 및 위치 등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둘째, 지진파가 시작하는 단층에서 관측점까지 지진파가 통과하는 경로의 영향을 받는다.
전파경로가 단단한 암반층을 통과하면 통과할수록 연약한 암반층을 통과한 지진파에 비하여 단주기 성분이 강해진다. 또한 지진 규모가 크고 장거리를 통과한 지진파에는 장주기 성분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지진규모는 작지만 단거리의 경우에는 단주기 성분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높은 주파수의 성분은 낮은 주파수의 성분에 비하여 감쇠가 큰 성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파수가 낮은 AM방송이 높은 주파수인 FM방송보다 멀리까지 들리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이것 역시 대단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지진발생의 위치를 모르니 경로 또한 모른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도심(downtown)은 먼 과거에 강이 운반한 퇴적층에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층지반은 지진파가 전달되어 오는 암반의 경로에 비하여 연약한 지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층지반에 의한 증폭효과는 매우 현저하다.
앞에 열거한 두 가지에 비하면 우리들이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현재 국가적으로는 활성단층을 규명하여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지진의 위치 및 크기를 예측하고자 하는 대규모의 연구과제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항공사진과 트렌치 조사와 같은 표면의 관찰조사를 통하여 지각 깊은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지진을 예측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구과학적인 연구는 연구과제가 종료되면 좀 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하여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스펙트럼은 구조물을 탄성으로 가정해 모든 주기에 대하여 최대 응답 값을 미리 계산한 그림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이해하면 할수록 지진파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구조물의 지진피해 예측도 가능한 내진설계 분야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만약 필자에게 어떤 지진피해 지역에 대한 응답스펙트럼을 보여주고 피해의 원인을 분석하라고 하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이 되더라도 나름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지만 응답스펙트럼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인류가 강진계를 개발하고 지진파를 관측하여 응답스펙트럼의 특성을 파악하기 전에는 지진력을 질량에 비례하는 관성력의 작용으로 생각하여 고층건물을 건설하지 못했다.
응답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지진파에는 단주기 성분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장주기 성분은 점차 감소하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고층건물의 건설과 더불어 면진구조물이라는 새로운 공법도 등장하게 되었다.
국민안전처 설계스펙트럼(그림-3.2)을 보면 전이주기 3.0초에서 1/T로 감소하던 기울기를 1/T2으로 변환되는 구간을 설정하고 있는 이유는, 주기가 길어짐에 따라 변위가 발산하는 현상을 줄여주어 면진구조물과 같이 변위가 큰 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배려이다.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구조물은 상시 하중과 같은 수직하중에 대해서는 높은 안전율을 갖고 있지만 지진과 같은 수평하중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형태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물의 수명기간에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지진력에 대하여 구조물을 탄성으로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진에 대비하여 절대적인 안전을 위하여 돈을 지불하기 보다는 보다 윤택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경비를 지불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내진설계의 목적은 작은 지진에 대해서는 탄성설계를, 큰 지진에 대해서는 구조물의 완전 붕괴에 의한 생명의 손실을 막는 소성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라는 불안전한 부재를 사용하는 구조물에 대한 소성설계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도로교 설계를 위한 미국의 AASHTO 규정에는 탄성지진력을 반응수정계수라는 상수로 나눈 값으로 사용함으로써 탄성설계의 개념을 소성설계의 개념으로 변환은 정말 단순하면서도 멋진 발상으로 반응수정계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내진설계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다음 편에는 반응수정계수의 의미를 한번 다루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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